반응형
손가락 살인 - 톰 레빈 지음, 김배경 옮김/르네상스 |
페이스북에 시시한 농담 몇 마디 썼을 뿐인데 친구가 죽었다!
그리고…… 깊은 밤 걸려 온 전화 한 통이 소녀의 마음을 뒤흔든다!
“아마 넌 무죄일 거야. 하지만 결백하다?”
열여섯 토리는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 케빈을 죽음으로 몰아간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케빈이 죽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언어폭력을 휘두른 혐의다. 하지만 토리는 인정할 수가 없다. 페이스북에서 농담 몇 마디 한 걸로 사람이 죽을 줄은 정말 몰랐다. 게다가 케빈을 놀림거리로 삼은 건 토리만이 아니다. 토리네 소프트볼팀 아이들도 모두 케빈을 무시했고, 체육 코치들도 걸핏하면 케빈을 괴롭혔다. 토리는 그저 잘나가는 운동부 선배들이 케빈을 놀려 먹을 때 몇 마디를 더 얹은 것뿐이다. 그러면 선배들이 좋아하니까. 단지 그뿐이었다.
그런데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입을 모아 토리를 ‘나쁜 년’이라고 말한다. 평소에는 티격태격해도 결정적일 때면 늘 한 편이 되어 주던 오빠마저 토리를 외면한다. “지옥에나 가, 빅토리아. 아니면 오프사이드나 페널티 박스로 가든지. 어디든 너 같은 사람들이 가는 데로 가.” 토리는 오빠가 이토록 모질게 구는 까닭이 그저 변호사비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자칫하면 토리의 학비는 물론이고 자기 학비까지 변호사비로 날릴 수 있으니까 그래서 화를 내는 거라고……. 아빠는 웃음을 잃었고, 엄마는 굿나이트 키스를 잊었다. 두 분 모두 애써 평상심을 유지하려 하지만, 사실은 토리만큼 겁에 질린 듯 보인다. 그나마 토리를 예전처럼 대해 주는 건 또 다른 중학교 때 친구 노아뿐이다. 하지만 그런 노아조차 네 잘못이 아니라는 말은 해 주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추정되는 심리를 앞둔 밤,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는 토리에게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 온다. 자살을 생각하고 있다는 사내아이, 앤디의 전화다. 토리는 자신에게 죄의식을 느끼게 하려는 장난 전화라 여겨 거칠게 끊어 버린다. 하지만 앤디는 다시 전화를 걸어 귀찮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토리는 그런 앤디의 태도에 슬금슬금 불안이 싹트기 시작한다. 오빠에게 농담하듯 앤디 이야기를 꺼내자 엄청난 비난이 쏟아진다. “너한테 자살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 근데 넌 그런 전화를 그냥 끊어 버려. 넌 그게 파울볼 잡아내듯이 그렇게 예사롭니? 네가 알아듣게 말하려면 이런 스포츠 얘기까지 들먹여야 하는구나.” 오빠의 비난은 토리의 불안을 더욱 부채질한다. 내일 아침에 누군가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어쩌나, 그 사람의 마지막 통화 상대가 자신이면 어쩌나…….
토리는 하는 수 없이 다시 전화를 걸어 앤디를 무사히 집으로 돌려보기 위한 통화를 시작한다. 그러나 통화가 길어질수록 무장 해제 되는 건 앤디가 아니라 토리 자신인 듯싶다. 앤디는 때로는 슬슬 구슬리고 때로는 거칠게 몰아붙이며 토리의 진심을 파헤친다. 길고긴 밤을 보내고 동이 터 올 무렵, 토리는 비로소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데…….
진실을 가린 베일을 한 겹 한 겹 벗겨 가는 최고의 심리 드라마!
《손가락 살인》은 사이버 폭력의 가해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보기 드문 작품이다. 주인공 토리는 친구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기는커녕 시종 자기 방어에만 급급한 모습이다. 끊임없이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이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마저 자아낸다. 그렇기에 그 철벽같은 자기 방어에 실금이 가고 진심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더더욱 눈을 뗄 수가 없다. 과연 토리가 애써 외면해온 제 양심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을지 끝까지 지켜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토리의 진심은 무엇일까?’라는 씨줄과 함께 독자를 옴짝달싹 못하게 옭아매는 것은 ‘앤디는 누구일까?’라는 날줄이다. 앤디는 마치 소크라테스의 산파술과 같은 대화법으로 토리를 허물어뜨린다. 그 날카로운 질문들은 토리뿐 아니라 더러는 가해자이고 더러는 방조자이고 더러는 피해자인 독자들의 폐부까지도 깊숙이 찔러 온다. 이 아이는 누구이기에 토리를, 그리고 독자를 이토록 끝까지 몰아붙이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앤디가 결국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지도 끝까지 긴장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손가락 살인》은 연극으로 치면 단막극과 흡사한 구성이다. 등장인물도 몇 안 되고, 사건도 단선적이고, 장소의 이동도 거의 없다. 사실상 토리와 앤디, 두 인물의 대화만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다시피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 대화의 생생함이 독자들로 하여금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토리와 친구들의 페이스북 포스팅을 재현해 사이버 폭력을 실감나게 묘사한 점이나 토리의 마음이 케빈에게서 멀어져 가는 과정을 보여 준 점 또한 무척 인상적이다. 이는 연극배우이자 감독으로 일해 온 작가의 경험이 작품에 녹아있는 까닭인 듯싶다.
작가 톰 레빈은 주인공 토리의 오빠처럼 청소년기에 화농성 여드름을 심하게 앓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평등해 보이는 또래 관계 안에서도 타인을 지배하고 억압하고 군림하려는 삐뚤어진 욕망이 작동한다는 것을 또렷히 기억한다. 그 욕망이 때로 또래 집단에서 남다른 존재를 가려내 괴롭히고 따돌리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도…….《손가락 살인》은 그 기억을 소환하여 더러는 가해자이고 더러는 방조자이고 더러는 피해자인 독자들 앞에 펼쳐 보이며 묻는다. 정말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느냐고? 다른 선택은 없었느냐고?
반응형
'국내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금 달라도 괜찮아 - 아이들과 학부모가 함께 읽는 편지 (0) | 2016.11.25 |
---|---|
혼자일 것 행복할 것 - 루나파크 : 독립생활의 기록 (0) | 2016.11.25 |
퇴사학교 - 이대로 회사를 다닐 수도 무작정 떠날 수도 없는 시대, 준비된 퇴사를 위한 로드맵 (0) | 2016.11.24 |
나의 친애하는 적 - 허지웅 (0) | 2016.11.23 |
나는 1년에 카페를 3개나 열었다 (0) | 2016.1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