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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선한 이웃 / 이정명

by 글쓰남 2017.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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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과 2017년 6월,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고 우리는 또 얼마나 바뀌었는가


선보이는 작품마다 마니아를 양산하며 대중을 끊임없이 매료시켜왔던 작가 이정명이 4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장편소설 《선한 이웃》이 출간되었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정보기관 공작원과 권력의 타깃이 된 연극 연출가 간의 대립을 담은 《선한 이웃》은 생존을 위해 악에 부역할 수밖에 없었던 이 사회의 주변인들이 겪는 고뇌, 갈등 그리고 최후의 선택을 그린 작품이다. 전작들에서 조선 시대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역사와 허구의 결속을 흥미롭게 이끌어냈던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직접 겪은 80년대의 한국 현대사를 바탕으로 한층 진화한 서사, 보다 깊이 있고 묵직해진 메시지를 선보인다.


선한 이웃 - 10점
이정명 지음/은행나무

《선한 이웃》은 1984년 서울대 프락치 사건을 모티프로 운동권의 실세로 지목된 미지의 인물과 그를 쫓는 공작원, 젊은 연극 연출가와 그의 연인 그리고 모든 공작의 배후에 서 있는 관리자 등 다섯 명의 시점으로 격동의 시대를 돌아본다. 작가는 각각의 등장인물들을 차분하게 조명하면서 혼돈과 절망의 구렁텅이로 개개인을 몰아가는 국가권력에 주목한다. 또한 그 이면에서 ‘정의’와 ‘선’이 도구적 가치로 활용되며 굴절되어가는 과정들을 생생하게 조명해낸다. 특히 작품 말미에 등장하는 충격적 반전은 우리에게 이 이야기가 과거에 묶인 것이라기보다 현재에서도 충분히 적용될 만하다는 점에서 작품의 메시지를 더욱 또렷하게 각인시킨다.

특히 1987년 6월 민주항쟁 30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선한 이웃》은 지난날 권력의 횡포에 맞서 촛불을 들었던 우리의 기억과 맞물리며 또 다른 의미의 결을 획득한다. 본 작품은 그저 80년대를 감상적으로만 다뤄왔던 후일담 소설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그 시대의 상황을 보다 입체적으로 조명해보려 한 문학적 시도로써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우린 무대 위에 서 있었다……

세상은 달라지겠지만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김기준’은 정보기관 요원이 된 이래 특유의 감각으로 승승장구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그런 그에게 정보부 수뇌부는 그에게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을 부여한다. 바로 ‘얼굴 없는’ 운동가 ‘최민석’을 검거하라는 것. 워낙에 신출귀몰하고 용의주도한 까닭에 그는 시민들 사이에서 영웅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를 잡기 위해 김기준은 팀을 꾸려 6개월 동안이나 최민석을 추적한다. 그러나 그만 눈앞에서 그를 놓치게 된다. 그 결과 팀은 해체되고, 김기준은 한직으로 좌천된다.

한편, 극작가로 활동하던 이태주는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각색한 <줄리어스 시저>를 연출하며 연극계에 화려하게 데뷔한다. 하지만 마지막 공연에서 “로마는 한 사람의 독재에 무릎을 꿇을 것인가”라는 브루터스의 대사가 문제가 되어 기관에 연행된다. 연극에 참여한 극단주, 배우 전원과 연출가 전원이 가혹한 심문을 받는 와중에 이태주만이 특별 우대를 받는다. 결국 극단주와 주연배우가 구속된 반면, 이태주는 보름 만에 방면된다. 이태주라는 자가 〈줄리어스 시저〉 식구들을 배반한 변절자라는 소문이 대학로를 떠돌면서 연극계의 미움을 사게 된 그는 고립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재기를 꿈꾸던 그는 심혈을 기울여 차기작 <엘렉트라의 변명>을 준비한다. 혹독한 검열, 밀고자라는 오명, 캐스팅 난항, 투자자의 외면으로 연극은 표류를 거듭한다.

‘김진아’는 배우가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고등학교 졸업 이후 상경했다. 매일매일 허드렛일을 하고, 일이 없는 주말에는 광고판을 메고서 샌드위치우먼을 자청하기도 하고, 여러 오디션에 지원하기도 하지만 고된 일상 끝에 그녀에게 주어진 기회는 단지 삼류 에로극 주연뿐이었다. 이러한 그녀는 포스터에 이끌려 연극을 보러 온 이태주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고, 이내 둘은 연인이 된다.


이태주는 김진아를 보며 자신이 진정으로 선보이길 원해왔던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더욱 심혈을 기울인다. 하지만 김진아는 이태주를 보며 연극을 통해 불의한 세상에 맞서려는 그의 의도를 간파한다. 김진아는 이태주가 품은 복심에 불안해한다. 그는 이전에도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사람들을 감옥에 보내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녀는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열성적으로 이태주를 돕는다. 이태주는 그러한 그녀를 만류하지 않는다. 

‘관리관’은 아직 최민석에 대한 집착을 끊지 못한 김기준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준다. 김기준은 최민석이 한 명이 아닐 것이라는 가정하에 그로 추정되는 유력 후보군을 가린다. 김기준은 지난날의 실패를 딛고 최민석을 체포하기 위해 보다 정교한 시나리오를 집필하는 임무에 착수한다.

맹렬한 정보요원 김기준은 얼굴 없는 민주화 투사, 최민석을 검거할 수 있을까? 또한 촉망받는 연출가 이태주의 <엘렉트라의 변명>은 순조롭게 공연될 수 있을까? 역사의 수레바퀴는 각자의 정의와 신념을 지켜내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그들을 향해 점점 다가오고…… 광풍이 휘몰아치던 그 세상 속에서 그들은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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