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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새를 기다리는 사람 - 화가의 탐조 일기

by 글쓰남 2017.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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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를 기다리는 사람 - 10점
김재환 글.그림/문학동네

화가 김재환의 탐조 일기『새를 기다리는 사람』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영문명 ‘버드워처Birdwatcher’로 불리는 이들은 자연을 손상하지 않고 새를 관찰한다. 새들을 통하여 자연을 보고 자연을 보호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이를 실천한다. 

화가 김재환은 2년 동안, 새를 만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다니며 취재했다. 이 책에 수록된 새의 종수만 셈해도 126종, 취재 장소는 22곳에 이른다. 작가는 무한한 애정에서 비롯한 끈기와 노력으로 다양한 새들의 생태를 유려한 글과 그림으로 남겼다. 책 속에는 일기 형식의 차분한 문장들 사이사이에 아름다운 새들의 모습이 세밀화로 담겨 있다. 때로는 연필 스케치로, 때로는 정성 들여 채색한 수채화로 제각기 글과 어우러진다. 새들을 원경으로 담은 풍경화나 야생동식물들을 담은 그의 그림들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해진다.


작가의 머릿속에는 1년 동안의 ‘새 달력’이 들어 있다. 어느 시기에 어느 장소로 가면 어떤 새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훤히 아는 그는, 서울에 살면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새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도시에 머물고 있지만 도시의 속도나 변화에 구속되지 않는 것은 작가의 마음에 야생의 자연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새들의 이동을 보며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고, 어린 새의 탄생과 성장과 이소를 관찰하며 여름을 보내고 내년을 기약한다. 

반면 현장에 도착하면 그는 소극적인 관찰자다. 새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만 야생의 자연에 인간의 영향력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윤리를 지킨다. 만나고 싶은 새를 못 만날지라도 야생의 자연에는 항상 무언가가 있다. 풍경을 감상하거나 바람 소리를 듣거나 계곡에 핀 꽃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하루가 간다. 책 곳곳에 작가가 야생의 자연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작가는 그림의 대상으로서 새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동물원의 철망에 갇힌 새나 박물관의 박제가 아닌 야생의 자연에서 살고 있는 새들의 모습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후 10년 넘게 취재하며 새를 그려왔다. 지정석인 바위 위에 내려앉는 참수리, 바람을 맞받아안으며 자리를 뜨지 않는 물새들, 다음 기착지로 떠날 준비를 하는 듯 먼바다를 보고 있는 검은바람까마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강렬한 붉은빛을 발하는 양진이 등 새가 실제로 ‘살아가는 공간’에서 새는 ‘살아있는 존재’로 인식된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매력적인 새들과 그들이 살아가는 자연의 풍경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새처럼 지구의 모든 공간을 가장 자유롭게 활용하는 존재는 없기에, 이 책에는 하늘과 땅과 바다 모든 장소가 등장한다. 날갯짓을 하는 자유로움 덕분에 새는 우리와 가장 가까운 야생동물이다. 다들 무심히 지나치지만, 도시에서도 다양한 새를 관찰할 수 있다. 멀리 섬과 바다를 찾아가지 않아도 곳곳에 새가 깃들어 있다. 굳이 멀리 찾아간 장소가 아니어도 가까운 산이나 공원에서 작은 새들을 찾아보고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또한 이 책은 야생의 자연 또한 우리의 일상과 닮아 있다는 걸 깨닫게 한다. 극적으로 편집된 자연에 관한 다큐멘터리들과 달리 지루하리만치 같은 일이 반복되고, 오랜 기다림 끝에 얻는 결과는 보잘것없어 보인다. 작가는 수리의 사냥 모습을 보기 위해 쫓아다니지만 꽁무니만 쫓다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 차가 진흙탕에 빠지기도 하고 추위에 손발이 얼고 오랜 시간 비바람을 맞기도 한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만남의 강렬한 경험은 그를 야생의 자연으로 이끈다. 

김재환은 오늘도 우연히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품고 또다시 새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아가서 언젠가 나타날 새를 기다리면서 자연과 교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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