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숲의 아이들 - 손보미 지음/안온북스 |
을지로의 숲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곳에서 아이들은 왜 죽고 죽어야 했을까?
■ 사라진 숲, 그곳에 존재했던 아이들
“우리가 한심하지? 우리가 인간쓰레기 같지? 당신 같은 사람들이 우리를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지 잘 알고 있거든? 내가 혐오스럽잖아?” -91쪽
10대 청소년이 함께 어울리던 또래를 잔혹하게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새로운 아이템을 찾던 채유형은 해당 사건을 조사하며 오토바이를 타는 다른 아이들을 취재던 중 도시의 후미진 곳에 모인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협박과 폭행을 당한다. 그러던 중 한 아이가 던진, 을지로의 숲으로, 꽃이 피어 있던 숲으로 가보라는 말이 실마리를 제공한다. 사건이 발생한 도심에 숲이라고 할 만한 장소는 없었다. 하지만 찾아야 한다. 어쩌면 을지로의 숲이, 채유형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인물이 겪은 베트남의 숲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기에. 그 또한 겪은 낯선 숲에서 아이였고, 오토바이를 타며 피의자 혹은 피해자가 되길 서슴지 않던 무리도 결국, 사라진 그 숲의 아이들일지도 모르니까. 그 숲은 다른 듯 결국 같을 테니까. 채유형은 묘한 이끌림에, 습관적으로 자기 자신을 파괴하던 그 힘으로 을지로의 숲을 찾는다.
■ 숲을 찾는 어른,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
“나는 심효전 사건에 대해 조사하기로 결정했고, 이게 내 기분을 좋게 만들어줄 거고…… 나는 이걸 계속할 거란 말이에요. 내 말 알아들어요?” -130쪽
채유형 피디의 곁에는 부루퉁한 표정의 진경언 형사가 있다. 그녀는 경찰서 돌아가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사건 수첩에는 빵집 이름뿐이다. 과거 후배이자 파트너의 치부를 끝까지 추적했다는 이유로 어떤 사건도 배정받지 못하고 있는 진 형사에게 모든 게 엉망이지만 빵 고르는 솜씨 하나는 빼어난 채유형이 나타난다. 모종의 힘에 이끌린 ‘두 사람’의 공조가 그렇게 시작된다. 둘은 사건의 진실에 다가갈수록 그들이 알지 못하는 진실이 숨어 있음을 예감한다. 그러나 그 진실을 향한 날 선 질문, “왜?”에는 쉽사리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그럴 때마다 진 형사는 빵을 한 입 넣고 씹으며 천천히 사건을 조사하고 정리한다. 그러다 문득 사라진 숲이 어디로 갔는지, 그곳에서 아이들은 무얼 했는지 좀처럼 드러나지 않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음을 진 형사는 깨닫는다.
■ 진 형사 시리즈의 탄생
이 소설은 세 번에 걸쳐 쓰였다. 2020년 초여름, 2021년 봄 그리고 2021년 겨울. 그러므로 이 소설과 관련된, 상이한 풍경을 배경으로 하는 기억들이 있다. -447쪽, ‘작가의 말’에서
《사라진 숲의 아이들》은 앞으로 이어질 ‘진 형사 시리즈’의 첫 작품이다. 손보미가 새롭게 선보이는 탐정소설의 출발점이며, 긴 시간을 두고 이루어질 꾸준한 구상과 끈질긴 집필에 대한 소설적 방식의 선언이기도 하다. 책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빵이 등장하고, 이는 그대로 진 형사의 캐릭터가 된다. 진 형사는 40대 후반 여성이다. 탄수화물과 카페인을 사랑하고 형사답지 못하게 몸은 날렵하지 못하며 그만큼 체력도 저질이다. 부루퉁한 표정에 친절하지 못한 말투를 가졌다. 《사라진 숲의 아이들》은 진 형사가 불안과 강박에 시달리는 젊은 여성에게 손을 내미는 이야기다. 흥미로운 미스터리에 여성 연대의 서사가 더해졌다. 여기에 손보미의 작품은 《사라진 숲의 아이들》에 이르러 우리가 애써 외면해왔던 한국 현대사의 굴곡인 베트남 전쟁과 그 후손에까지 특유의 시선을 던진다.
진 형사 시리즈는 계속될 것이다. 다른 사건을 공조해 수사하거나, 진 형사의 흩어진 과거가 모일 수도 있다. 그게 무엇이든 손보미는 이제 시작을 했고, 그것이 독자들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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