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 사과의 기술 - 에드윈 L. 바티스텔라 지음, 김상현 옮김/문예출판사 |
왜 사람들은 사과에 실패하는가?
사과의 방법과 본질에 대한
언어.문화.철학.사회학적 분석을 담은 책!
“민중은 개.돼지”라고 말했던 나향욱 전 정책기획관은 국회에서 울먹이며 사과를 했지만 도리어 여론은 더 악화되었다. 나향욱 전 정책기획관은 국회에서 행한 사과에서 “본심이 아니었다”, “영화 대사를 인용했다” 등 변명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잘못된 사과로 상대방을 더 화나게 하는 경우는 나향욱 외에도 최근 한국 사회에 비일비재하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조사를 받은 옥시도 피해자 가족들에 대한 사과와 배상 문제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다 불매 운동으로까지 사태를 악화시켰다. 도대체 그들의 사과는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에드윈 L. 바티스텔라의 《공개 사과의 기술: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사과는 무엇이 다른가》는 정치인과 기업인, 연예인 등 유명인들의 사과 사례를 분석해, 진실한 사과와 그렇지 못한 사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사람들이 왜 사과하거나 사과하지 않겠다고 결정하는지,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어떻게 성공하거나 실패하는지 밝혀낸다. 또한 사과의 바탕에 깔린 원칙을 분석함으로써 사과의 현명한 소비자가, 사과를 더 잘하는 사람이 되도록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언어학·심리학·사회학·문화의 시각으로 사과 사례를 분석하다
언어학자인 저자는 사과의 다양한 측면을 밝혀내기 위해 언어학은 물론 사회학과 심리학, 문화적 배경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각각의 경우에 맞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저자가 각 장에서 분석을 시도하는 사례들 외에도, 36개의 공개 사과 사례를 별도의 챕터로 소개해, 각 사례마다 왜 사과가 성공하거나 실패했는지, 성공한 사과는 어떤 언어를 사용했고, 실패한 사과는 무엇을 하지 않아 실패했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사례 속 인물들은 우리에게 무척 익숙한 이들이다. 링컨, 루스벨트, 케네디, 조지 부시, 클린턴, 오바마와 같은 미국 대통령에서부터, 멜 깁슨, 오프라 윈프리, 제인 폰다와 같은 유명인들과 독일, 일본, 이란, 이라크 등 정부 차원의 사과 사례까지 포함하고 있다. 저자가 시도하는 다양한 분석과 사례들은 독자들에게 사과에 대한 전례(典例)를 제시해줄 것이다.
완전한 사과는 무엇을 담아야 하는가: 사과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
저자는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과 니컬러스 태뷰치스를 인용해 완전한 사과에 대해 설명한다. 고프먼에 따르면 완전한 사과는 사과하는 이가 수치심과 유감을 표현하고, 특정한 행동 규칙의 위반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 외면이나 배척에 공감하는 것을 포함해야 한다. 또한 잘못된 행위를 명시적으로 부정하고, 그 행위와 이전의 자신을 비판하며 앞으로 바른 행동을 하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그리고 속죄하고 배상을 제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자신을 둘로 분리한 뒤, 잘못을 저지른 과거의 자신을 비판하고 던져버려야 한다. 저자는 트루먼 미 대통령과 존 케리 상원의원, 살인을 저지른 칼라 페이 터커의 사례를 통해 ‘비난받아 마땅한 자아’와 도덕적으로 교화되고 ‘처벌에 공감하는 자아’로 분리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 책은 이러한 사회학자의 접근을 이용해 사과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과는 어떻게 성공하고 실패하는가: 사과에 대한 윤리적 접근
사과는 ‘사과하는 사람’뿐 아니라 ‘사과 받는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저자는 이를 두 단계로 나눠 설명한다. 먼저 가해자가 잘못을 인정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적시’ 단계이다. 그리고 피해자가 사과를 수용하거나 거부하는 ‘응답’ 단계가 그것이다. 사과는 어느 단계에서든 실패할 수 있다. 잘못한 내용이 정확히 규명되지 않은 채 가해자가 엉뚱한 사안에 대해 사과하려고 하는 경우, 사과가 불완전하거나 모호해서 진심 어린 유감 표명이 되지 못한 경우에도 실패할 수 있다. 그리고 응답 단계에서 피해자가 사과를 거부하면 실패할 수 있다. 결국 사과는 가해자의 일방적인 방식이 아닌, 피해자에게 인정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앞서 언급한 나향욱 전 정책기획관의 경우 잘못을 인정하는 적시의 단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자인 국민들도 사과를 수용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왜 사과하거나 사과하지 않는가: 사과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
이 책은 베트남전쟁 당시 밀라이에서 자행된 민간인 학살의 가해자 사례를 통해 사과의 심리학에 대해서도 분석한다. 저자에 따르면 가해자는 보통 외적인 이유와 내적인 이유로 사과한다고 말한다. 외적인 이유는 잘못을 바로잡고 자신의 평판을 복구할 기회라는 희망을 포함한다. 내적인 이유는 공감, 죄의식, 수치 등과 연관된다. 피해를 당한 사람의 고통을 공감하고, 자신을 처벌해야 한다는 점을 이해하며, 자기 이미지에 값하지 못한 실수를 수치스러워한다. 이러한 경우 양심이라는 내부의 목소리에 의해 사람들은 사과를 한다. 반면 사과를 통해 자기 이미지에 미칠 사회적·감정적 부작용, 즉 약점이나 잘못, 수치심, 당혹감의 표현이 체면을 구길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사과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사과의 언어는 무엇인가: 사과에 대한 언어학적 접근
사과의 언어는 사과를 성공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이고 핵심적인 요소다. 사과의 언어는 공식적이고, 본의에 충실하며 수행적일 수도 있고(저는 ~에 대해 사과합니다), 본인의 내면 상태를 알림으로써 사과를 암시할 수도 있다(~해서 죄송합니다, 유감입니다). ‘미안합니다(sorry)’와 ‘유감입니다(regret)’는 공감이나 관계 개선용으로 쓰이기도 한다.
서술부를 쓰는 방법뿐 아니라 다양한 문법적 자원은 사과를 어떤 수준과 방식으로 제공할지 결정할 때 폭넓은 범위와 유연성을 제공한다. 문법적 선택과 세목을 신중하게 읽으면 자기 말에 대한 화자의 태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그가 쓴 언어는 진실한 사과의 표현인가, 그렇지 못한가? 단순한 내면 상태의 표현인가, 아니면 변명이나 모욕의 표현인가? 사과의 언어를 제대로 분석할 수 있다면 사과를 할 때뿐 아니라 상대방의 사과가 진실한지, 자신의 잘못 중 어떤 부분을 인정하고 어떤 부분은 인정하지 않고 있는지에 대해 판단 기준을 제공해줄 것이다.
왜 사과의 방법을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한가
사람들은 왜 사과하는가? 당혹감, 죄책감, 수치심, 문제를 바로잡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그러나 땅콩 회항 사건, 가습기 살균제 사건, 위안부 사건 등 국민들을 분노하게 한 지난 사건들을 비춰볼 때, 피해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제대로 된 사과는 쉽게 나오지 않는다.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 기업인과 같은 조직을 책임지는 리더에서부터, 일상생활에서 부딪치는 수많은 문제에 대해 사과할 일과 마주하게 되는 우리에게 이 책은 사과에 대한 ‘단 하나의 정답’을 처방해주지 않는다. 도리어 사과가 어떻게 기능하고 어떻게 성공하며, 어떻게 실패하는지 묘사하고 있다. 이는 개별 상황이 독특하고, 다른 잘못은 다른 사과를 요구하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사례에서 공통적인 것들은 잘못을 수용하는 데는 반성과 분석, 용기, 성숙이 필요하다는 점을, 그리고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사과에는 세심한 ‘기술’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공개 사과의 기술’ 국내 사례 분석(‘옮긴이 말’에서 인용)
에드윈 L. 바티스텔라 교수의 《공개 사과의 기술》은 다양한 공개 사과의 사례를 통해 그 이유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왜 성공하거나 실패했는지, 실패한 경우 사실은 어떤 방식과 내용으로 사과했어야 하는지 알기 쉽게 설명한다. 모두 미국의 사례지만, 거기에서 끌어내는 ‘공개 사과의 기술’은 국적이나 특정 상황과 상관없이 일관되게 적용할 수 있는 방식이고 비결이다. 근래 한국에서 벌어진 여러 주목할 만한 사건?사고와 그에 뒤이은 성공적이거나 그렇지 못한 사과 사례 역시, 바티스텔라 교수가 제시한 ‘기술’의 시각에서 명징하게 분석할 수 있다. 한국의 몇 가지 사례를 이 책이 설명한 ‘기술’의 렌즈로 들여다보자.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건
2014년 12월 5일 미국 JFK 국제공항을 이륙하려던 대한항공 086편 여객기가 돌연 램프로 유턴했다. 대한항공 조현아 당시 부사장이 객실 승무원이 마카다미아를 제공한 서비스를 문제 삼아 항공기를 되돌리고 기내 사무장을 강제로 내리게 한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이다. 해외에서는 ‘땅콩(미친) 분노(nut-rage)’라는 표현으로 조롱을 당했고, 국내에서는 ‘사상 초유의 갑질’이라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대한항공과 조현아 부사장은 신속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대신 관련 사원들의 카카오톡을 검열하고, 거짓 해명으로 사건을 봉합하려 했다. 모욕을 준 승무원과 사무장에게 사과하지도 않았다. 문제가 커지자 조 부사장의 부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때는 늦었고, 사과는 구체성과 진정성을 담지 못했다. 그 결과 사태도 원만히 수습되지 않았고, 도리어 역풍을 일으키는 쪽으로 작용했다.
바티스텔라 교수에 따르면, 완전한 형태의 사과는 다음과 같은 요소를 포함한다. (1) 사과하는 이의 수치심과 유감 표명 (2) 특정한 규칙 위반의 인정과 그에 따른 비판 수용 (3) 잘못된 행위의 명시적 인정과 자책 (4) 앞으로 바른 행동을 하겠다는 약속 (5) 속죄와 배상 제시. 이런 요소에 비춰 보면 ‘땅콩 회항’을 둘러싼 일련의 사과 행위는 문제 해결에 필요한 핵심 요구 사항, 특히 (3)~(5)번 조항을 충족하지 못한다.
일제 치하 위안부 동원을 둘러싼 일본 아베 정부와
한국 박근혜 정부의 ‘사과’ 협상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논란도 이 책이 제시한 ‘기술’의 렌즈로 들여다보면 그 문제점이 명백하게 드러난다(7장 국가 차원의 사과).
이 책에 소개된 사례는 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이 시행한 미국 내 일본인에 대한 억류 조처다. 그 조처로 미국 내 일본인은 막대한 피해를 당했지만, 피해 배상은 전쟁이 끝난 지 40년이 넘도록 진행되지 않았다. 미국 의회는 1988년에야 억류가 편견과 집단 히스테리에서 기인한 것이었음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했다. 배상금 지불을 승인했고, 궁극적으로 억류자와 그 후손에게 총 1조 8000억 원 이상을 지급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다섯 명이 억류 사건에 대해 직접 사과했다.
그에 견주면, 거꾸로 일본이 가해자 신분인 위안부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70년이 넘도록 주목할 만한 사과나 배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일본의 아베 정부와 한국의 박근혜 정부는 쫓기듯 배상협상에 조인했다. 2015년 12월 28일 양국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해결 방안에 합의하고 최종적 종결을 약속했다고 전격 발표했다. 정작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들은 협상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다. 협상 내용이 무엇이든 ‘사과란 잘못을 저지른 사람과 그 잘못으로 피해를 당한 사람의 상호작용’이라는 기본 전제조차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두 정부의 위안부 협상은 그 시작부터 유효한 것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더욱이 양국 외교 장관이 공동 발표한 합의 내용은 구체성이 결여되었다. 그중 ‘사과’라고 해석될 만한 대목은 다음 두 항목인데, 그것이 실은 진정성이 깃든 사과가 아니라 포장뿐인 정치적 꼼수에 지나지 않음이 다음 항(3)에서 드러난다.
1.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함. 아베 내각 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 총리대신으로서 다시 한 번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함.
2. (전략) 이번에 일본 정부의 예산에 의해 모든 전(前) 위안부 분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조치를 모색함. 구체적으로는, 한국 정부가 전(前) 위안부 분들의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을 설립하고, 이에 일본 정부 예산으로 자금을 일괄 거출하고, 일?한 양국 정부가 협력하여 모든 전(前) 위안부 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행하기로 함.
3. 일본 정부는 상기를 표명함과 함께, 상기 (2)의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번 발표를 통해 동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함. 또한,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와 함께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동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비판하는 것을 자제함.
바티스텔라 교수에 따르면, 사과는 ‘사과 요구’ ‘사과’ ‘응답’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사과 요구’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과 그것을 당한 사람이 사과로 화해할 수 있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다음 단계인 ‘사과’는 가해자가 잘못을 적시하고 피해자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한편 ‘응답’은 피해자(혹은 잘못이 한 사람 이상에게 해를 끼칠 수 있으므로 피해자들)의 영역이다. 사과는 수용되거나 거부될 수 있지만, 그것이 유일한 선택 사항은 아니다. 사과가 어떤 식으로든 불충분할 때,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더 많은 협상이 필요할 수도 있다. 불충분한 사과는 심지어 새로운 빌미를 만들거나 사과 요구로 회귀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가해자인 일본 측은 (1)과 (2)는 표명할 수 있지만 (3)은 일본의 권한 밖이다. 그것은 오직 피해자가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사과를 수용하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주체는 누구인가? 상식에 기댄다면 위안부로 끌려간 당사자들, 혹은 그들이 명시적으로 위임하거나 인정한 정부나 단체, 인사들이어야 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그 주체의 자격이 있다고 말하려면, 문제의 협상 이전에 희생 당사자들의 이해와 승인을 명백히 구하고 취득했다는 절차상의 증거와 명분이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는 그런 권위를 정당하게 획득하는 데 실패했다. 따라서 사과의 관점에서 본다면, 일본 아베 정부와 한국 박근혜 정부의 협의는 실질적 효과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둘러싼 ‘정부 책임’ 논쟁
현재 문제가 된 가습기 살균제의 인허가는 과거 정부에서 내려진 일이기 때문에 현 정부는 책임이 없다는 주장의 시시비비도, 이 책의 시각으로 보면 한결 명쾌하게 가려진다(7장 국가 차원의 사과).
계승자들은 그 전임자들이 저지른 불의에 대해 사과할 책임이 있는가? 어떤 이들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사과란 본래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에게 해당된다는 논리다. 사과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이 종종 취하는 입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바티스텔라 교수는 그것이 책임과 죄를 동일시한 데서 나온 협소한 시각이라며, 대신 ‘화해’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국가 지도자들은 과거의 불의를 바로잡아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 그것은 구타당하는 사람, 자연재해, 기아, 노숙자 문제 등 우리가 초래한 불의나 피해가 아니라도 여전히 도덕적 의무를 져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언어는 다르지만 공개 사과가 성공하거나 실패하는 속내는 대동소이하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다, 그래서 사과한다고 명확하고 솔직하고 진실하게 표현하는 사과는 대체로 성공한다. 그러나 사과하다(apologize)라는 분명한 표현 대신 미안하다(sorry), 유감이다(regret), 불운하다(unfortunate), 틀렸다(wrong), 용서해달라(forgive) 등 사과하는 듯하지만 핵심에서 조금씩 비켜선 단어들을, 무엇을 잘못했는지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은 채, 심지어 때로는 누구에게 사과하는지 밝히지도 않은 채, 동원하는 거짓 사과는 실패하기 십상이다.
사과와 사죄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사과나 사죄는 놀랍도록 드물다. 사과나 사죄로 포장한 발뺌이나 체면 세우기가 훨씬 더 흔하다. 때로는 어느 사과나 사죄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혹은 진짜처럼 들리지만 교묘한 면피용에 불과한지 가리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그래서 사과는 거기에 담긴 후회가 화자의 감정을 진심으로 드러낼 때 신실하다는 바티스텔라 교수의 지적이 더욱 절실하다. 공개 사과의 깊고 넓은 스펙트럼을 명쾌하게 드러내고, 진정한 사과와 거짓 사과를 구별하는 기준을 제시하는 바티스텔라 교수의 이 책이, 거짓 사과와 사죄가 범람하는 현실에서 유용한 지침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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