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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2만 원짜리 장난감' 몽마르뜨 공원에 버려진 토끼들

by 글쓰남 2019.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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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현장] '2만 원짜리 장난감' 몽마르뜨 공원에 버려진 토끼들
서울 서초 반포동에 위치한 '몽마르뜨 공원'에는 유기된 토끼들이 서식하고 있다. 중성화수술을 받았다는 표시로 이마에 봉선화 물이 든 토끼가 시민봉사자들이 두고 간 풀을 먹고 있는 모습. /서초=임현경 기자
서울 서초 반포동에 위치한 '몽마르뜨 공원'에는 유기된 토끼들이 서식하고 있다. 중성화수술을 받았다는 표시로 이마에 봉선화 물이 든 토끼가 시민봉사자들이 두고 간 풀을 먹고 있는 모습. /서초=임현경 기자

생명 경시가 만들어낸 '토끼 언덕'…"공존 필요한 때"

[더팩트ㅣ서초=임현경 기자] "토끼가 땅에서 솟았겠어요? 다 사람이 버리고 간 거죠."

가벼운 산책이나 운동을 즐기는 시민들 사이로 작은 생명체가 발소리도 없이 후다닥 달려나갔다. 쫑긋거리는 귀에 커다란 눈을 가진 토끼였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검은색, 회색, 흰색, 점박이, 알록이…색도 무늬도 다양한 토끼 수십 마리가 추운 겨울 도시 한복판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한 '몽마르뜨 공원'의 이야기다. 지난 7일 오전 몽마르뜨 공원은 '토끼 언덕'이라는 별칭에 걸맞은 모습이었다. 말라버려 갈색으로 변한 풀숲에서 토끼들이 몸을 웅크린 채 햇볕을 쬐고 있었다. 토끼들은 사람이 근처를 지나가도 겁을 먹지 않았고, 손을 내밀면 혹시 먹을 것이 있을까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야생토끼라기엔 사람에게 친근했고 포식자로부터 몸을 감추기 위한 '보호색'이 전혀 없었다. 키우기 쉽고 보기 좋도록 애완용으로 개량된 종이었다. 그러나 울타리 하나 없이 공원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는 토끼들에게 주인이 있을 리 없었다. 누군가 기르기 위해 태어났지만 기를 사람이 사라진, 즉 '버려진' 토끼였다.

주민들은 \
주민들은 "많이들 버리고 갔다"며 빈번한 토끼 유기에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공원에서 산책 중인 시민과 풀숲에 숨은 토끼 모습. /임현경 기자

공원에서 운동 중이던 주민 A씨는 "지금은 날이 추워 눈에 띄지 않지만, 토끼가 정말 많이 산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는 "처음엔 토끼가 없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생겼다"며 "땅에서 솟았겠느냐, 다 사람이 버리고 간 것"이라고 덧붙였다.

B씨는 "종종 근처 유치원이나 초등학생들이 현장학습을 온다. 토끼를 보며 좋아하는 아이들이 공원을 가득 메운다"며 "당연히 시나 구에서 키우는 토끼인 줄 알았다"고 밝혔다.

서초구청 관계자는 "구청이나 공원 측에서 따로 돌보고 있는 토끼가 아니"라며 "공원에 토끼가 나타나기 시작한 건 지난 2011년 토끼 한 쌍이 유기된 이후"라고 설명했다. 이후 번식을 반복하며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이다. 19세기 영국에서 들여온 토끼 24쌍을 감당하지 못해 지금까지 농작물 피해와 자연 황폐화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호주의 사례만 봐도, 토끼의 무시무시한 번식력을 알 수 있다.

몽마르뜨 공원에 토끼가 나타난 건 지난 2011년 누군가 한 쌍의 토끼를 유기한 후다. 유기된 토끼가 구청에서 걸어둔 유기 방지 현수막 아래에서 먹이를 찾고 있는 모습. /임현경 기자
몽마르뜨 공원에 토끼가 나타난 건 지난 2011년 누군가 한 쌍의 토끼를 유기한 후다. 유기된 토끼가 구청에서 걸어둔 유기 방지 현수막 아래에서 먹이를 찾고 있는 모습. /임현경 기자

여기에 '공원에 토끼가 많다더라'는 소문을 듣고 몰래 키우던 토끼를 버리고 가는 일이 빈번히 발생했다. 결국 지난해 9월 공원에 사는 토끼의 수가 100여 마리로 늘어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애완견이 산책 중 토끼를 공격해 피가 낭자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동물권단체는 약 35마리를 중성화 수술 후 공원에 다시 방사, 60마리 이상을 임시보호·치료하고 입양을 진행하는 등 구청 측의 무관심 속에서 여러 노력을 기울여왔다. 10여 명의 시민봉사자들은 신선한 풀과 사료를 공원 곳곳에 놓아두고 주기적으로 토끼의 상태와 유기 발생 여부를 살폈다.

또한 이들은 지난해 11월 서초구청 앞에서 '몽마르뜨 공원 토기 책임 방기 서초구청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구청의 관심과 대책을 촉구했다. 약 7년간 폐사된 토끼를 처리하는 등 소극적으로 움직였던 구청 측은 동물권단체와의 면담을 계기로 유기 방지 현수막을 설치하고 토끼 유기범의 신원을 파악해서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동물권단체와 함께 관련 대응 방안을 모색 중이다.

손이슬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는 \
손이슬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는 "몽마르뜨 공원 사례를 계기로 동물과 시민이 공존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동물권단체가 지난해 11월 서초구청 앞에서 토끼 관리 책임 방기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연 모습. /동물자유연대

손이슬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는 "구조작업을 하는 3일 동안에도 공원에 토끼를 버린 사람들이 많았다"며 "한 시민봉사자가 이를 발견하고 제지하니 '여기 친구들도 많고 토끼가 먹을 풀도 있는데 뭐가 문제냐'며 적반화장으로 화를 냈다"고 전했다. 손 활동가는 "토끼는 마트에서 2~3만 원에 판매되고 있다"며 "가격이 매우 저렴하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샀다가 관리가 까다롭고 강아지나 고양이와 성격이 다르니 실망해 유기하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이어 "처음엔 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던 구청에서도 지금은 관련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협조하고 있다"며 "이번주 내로 시민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공간에 토끼를 위한 급식소를 설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몽마르뜨 공원 외에도 서리풀 공원, 월드컵 공원 등 버려지는 토끼가 너무나 많다"며 "몽마르뜨 공원의 사례를 계기로 토끼, 동물들이 삶을 보장받고 시민들과 공존할 수 있게 되는 게 저희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imar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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